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론조 모닝 (문단 편집) == 기타 == 코트 밖에서는 팬들에 대하여 항상 신사적인 매너와 함께,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재단을 운영하며 자선사업과 봉사활동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을 정도로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준 선수이다. 특히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보니 고아들에게도 많은 관심을 쏟는다고 한다. 현재는 마이애미 히트의 부사장을 지내고 있다. [[1994년]] [[중앙일보]]에 "알론조 모닝의 NBA 통신"이라는 칼럼을 연재한 적이 있다. [[http://news.joins.com/article/2855375|1화]] 그 당시 NBA의 인기가 절정이어서 가능했었던 기획인 듯. 4대 센터 시기의 가장 큰 피해자 중 하나이다. 알론조 모닝은 통산 올디펜스 팀 2회에 그쳤는데, 29세가 되어서야 첫 선정되었다. 그런데 딱 두번 있는 디펜스팀이 둘 다 퍼스트팀, 심지어 둘 다 수비왕이었다. 즉 22세에 데뷔한 선수가 커리어 첫 6시즌 동안은 디펜스 세컨팀에도 한 번 못 오르다가, 29세가 되어 갑자기 2년 연속 수비왕을 했다는 것. 이런 괴악한 현상은 그의 포지션 경쟁자였던 [[디켐베 무톰보]], [[하킴 올라주원]], [[데이비드 로빈슨]]이 셋 다 역대급 수비수였기 때문이다. 위에 언급된 6시즌간 96년의 [[게리 페이튼]]을 제외하곤 하킴과 무톰보가 전부 수비왕을 나눠먹었으며, 심지어 94-95시즌에는 하킴은 디펜스팀 탈락, 로빈슨이 퍼스트팀에 올랐는데 정작 수비왕인 무톰보는 세컨팀에 그치는 괴현상도 일어났다. 그리고 그 다음해에 하킴은 무톰보를 밀어내고 세컨팀에 올랐다. 즉 저 셋은 백중세의 수비력이었기에 매번 서로를 백지장 차이 하나로 밀고 밀리면서 수비팀을 독식한 것. 모닝의 수비력은 99시즌 이전에 이미 완성된 상태였다. 그는 루키시즌에 무려 3.5블록을 기록할 정도였고, 5년 연속 2.7개 이상 블록을 기록한 수비수였다. 심지어 그가 이끄는 96-97시즌 마이애미 히트는 실점 리그 3위, 페이스를 감안한 디펜스 레이팅은 리그 전체 1위인 최강의 수비팀이었다. 그런데 이 팀의 수비에이스인 모닝이 아닌, 그의 조력자이자 모닝보다 수비력이 확연히 한 수 아래였던 파워포워드 P.J. 브라운만 수비 세컨팀에 오르는데 그쳤다. 물론 99시즌 이전까지 모닝은 히트에서 70경기를 넘긴 적이 없을 정도로 은근히 부상이 잦은 선수였지만, 저 정도 이력이라면 58경기에 그친 98시즌과 60경기에 그친 94시즌을 제외하면 충분히 수비세컨팀 정도는 노려볼 만했다. 그런데도 무관에 그쳤다. 올NBA팀도 마찬가지로, 그는 99시즌 퍼스트팀, 00시즌 세컨팀이 올NBA팀 수상이력의 전부이다. 그런데 무관에 그친 6시즌동안 그의 평균 스탯은 21.1점 10.1리바운드 2.9블록 야투율 52.3%였고 올스타전에도 네번이나 나갔다. 올스타전에 못 나간 것은 결장이 잦은 98시즌과 루키시즌이던 92-93시즌 뿐인데, 92-93시즌 그의 스탯은 78경기 출장, 21점 10.3리바운드 3.5블록 야투율 51.1%였다. 93년도 올스타에 선정된 센터들은 수비왕이자 퍼스트팀 멤버/MVP 투표 2위 하킴 올라주원(26.1점 13리바운드 3.5어시스트 4.2블록 야투율 52.9%), 세컨팀 멤버이자 MVP투표 4위 패트릭 유잉(24.2점 12.1리바운드 2블록 야투율 50.3%), 서드팀 멤버 데이비드 로빈슨(23.4점 11.7리바운드 3.7어시스트 3.2블록 야투율 50.1%), ), 신인 동기이자 신인왕 [[샤킬 오닐]] (23.4점 13.9리바운드 3.5블록 야투율 56.2%)로 딱 봐도 모닝보다 월등한 활약상이었다. 이 시즌에 20-10을 기록한 '''센터'''(빅맨이 아닌 순수 센터만이다)만 무려 6명으로, 모닝과 20.2점 10.2리바운드 4.4어시스트 야투율 57.1%를 기록한 [[브래드 도허티]] 둘 다 올스타에 뽑히지 못했으며, 13.8점 13리바운드 3.5블록 야투율 51%를 기록한 무톰보는 올NBA팀 '''투표 단 한장'''조차 못 얻었으며, 각각 3.5블록한 모닝과 무톰보, 오닐은 수비왕 투표에서 단 한표도 못 얻었다. 한마디로 웬만큼 잘해선 센터로 주목 받기 정말 힘든 시대였다. 본인이 팀을 박차고 나가기는 했으나 현재까지 [[샬럿 호네츠]] 구단의 최고의 선수로 거론되고 있다.[* 모닝이 최고의 선수로 거론되는 구단은 2004년 신규 창단된 후에 2014년 연고이전했던 [[뉴올리언스 펠리컨스|뉴올리언스 호네츠]]로부터 1988년~2002년의 역사를 되돌려받은 샬럿 밥캣츠-샬럿 호네츠를 의미한다. 뉴올리언스로 이전한 호네츠의 경우에는 [[크리스 폴]]과 [[앤서니 데이비스]] 등이 최고의 선수를 다투고 있다.] NBA 75주년 팀에는 들어가지 못했으나 애슬레틱스 잡지 선정 75인에는 호네츠 전성기 멤버들 가운데서 유일하게 들어갔다.[* [[로버트 패리시]]와 [[드와이트 하워드]]는 75인에 선정되었으나 두 선수는 호네츠에서 뛴 기간이 짧다. 감독으로 선정된 [[래리 브라운]] 역시 밥캣츠 시절 감독으로서 몇 시즌 팀을 맡았을 뿐이다.] [각주] [[분류:미국의 농구 선수]][[분류:체서피크(버지니아) 출신 인물]][[분류:1970년 출생]][[분류:1992년 데뷔]][[분류:2009년 은퇴]][[분류:NBA 영구결번 선수]][[분류:파워 포워드]][[분류:센터(농구)]][[분류:샬럿 호네츠/은퇴, 이적]][[분류:마이애미 히트/은퇴, 이적]][[분류:브루클린 네츠/은퇴, 이적]][[분류:조지타운 대학교 출신]][[분류: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분류:미국의 개신교 신자]][[분류:미국의 올림픽 농구 메달리스트]][[분류:2000 시드니 올림픽 농구 메달리스트]]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